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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수 癸 성향

계수의 성향

by 천기도사 (김태경) 2013. 2. 28.

1) 열째천간과 생리적인 癸의 의미


우선 마지막으로 위치한 계수의 의미가 중요하겠다. 맨 끝에 있다고는 해도 실은 이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도 같다. 이유는 원래가 하나의 끝은 또다른 시작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수의 위치가 임수에 비해서 무슨 차이점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 해볼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물이라고 하는 역할에 대해서 음미를 해보는 것이 가장 유력하겠다.

물은 과연 무엇인가는 새삼 묻지 않더라도 이미 벗님도 짐작을 하시리라고 생각한다. 즉 물은 만물의 생명력을 유지시켜주는데 없어서는 안될 성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과연 이 생명력이 물만 가지고서 해결이 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물만 가지고서는 되지않는 것이, 물과함께 빛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빛이 없는 물은 그야말로 암흑일 뿐이다. 물이 있고 빛이 있을 때 비로소 생명력은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계신 대로이다.

그런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물=생명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을 시켜놓는다. 그러면 실제로 물만 있으면 생명력은 자동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인식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유인즉 태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왔기 때문에 전혀 염려를 할 필요가 없어서 일런지도 모르겠다. 태양은 항상 있는 것이기에 물만 있으면 생명은 자랄 수가 있는 것이다. 혹 이렇게 묻고 싶으실런지도 모르겠다.

“만약 어느날 갑자기 태양이 폭파되어버린다면?”

그러게 되면 아무것도 존재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니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궁리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 지구는 자연스럽게 종말을 고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양은 당연히 존재를 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다른 이야기들이 가능하다. 그래서 물은 생명력으로 연결이 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도 이러한 관점으로 추리를 해보도록 하겠다.

물이 있으면 고기가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의 몸에서도 물이 있으면 생명이 생긴다. 인체의 물은 자연의 물과 비교해서 구체적인 영양표는 다르겠지만 그 작용은 똑같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성의 몸에서 물이 말라버리면 생명체도 생길수가 없다. 여기서 물이 마른다는 것은 생리가 끝나서 폐경기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잉태를 하는 것은 끝이다. 이것은 어느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배란(排卵)이 없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잉태가 가능하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몸에서 생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계수의 의미에서 단지 두 개뿐인 설명에서 하나인 ‘월경 계’라고 하는 의미로써 쓰였던 모양이다. 실제로 월경은 여인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여성의 특권으로 인정해주는 출산능력이 여기에서부터 출발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물=월경’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그뿐이 아니다. 일단 잉태를 했더라도 자궁에 양수가 넉넉하게 들어있어야 성장이 가능한 것도 물론이다. 만약 잉태는 했는데, 자궁내의 환경이 여의치 못하다면 유산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역시 물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오나가나 물과 연결되는 것이 계수이다. 이 물은 단지 목마를 때 먹는 물 뿐이 아니라, 거의 모든 상황에서 통하는 의미로써 액체인 셈이다. 즉 혈액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모든 것에는 물이 없어서는 되지를 않는다. 심장이뛰는 것도 이 물을 운반하기 위해서이다. 혈액인 운반되지 않으면 몸에 영양공급이 끊어지게 되고, 이것은 그대로 썩어버린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래서 심장이 멈추면 큰일인데, 심장이 뛰는 이유가 바로 물을 운반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자연에서도 물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다. 아니 잘하면 일주일은 살수도 있다고 헀다. 그러나 그뿐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이니 결국은 죽음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서울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때에도 그 속에서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은 살아났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그 속에서도 물을 먹을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비가 내렸다는 것이 그나마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모든 생명체는 일단 물이 없으면 삶의 가치가 더 이상 유지될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봐야 하겠다. 이런 몇가지의 이유로 해서 계수는 물이면서 또한 생명을 잉태해서 성장시키는 자궁 속의 물도 포함한다고 관찰을 해본다.


(2) 물질적인 관점


이제 본격적으로 물의 연구를 해보자. 물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보면 물의 특성에 대해서 묘한 느낌을 갖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물-법칙’으로 연결되는 구조이다. 나름대로의 이치에 있어서 기준으로 삼는 것을 법칙이라고 부른다. 수학에서나 과학에서나 문학에서나 심지어는 그림이나 음악에서도 나름대로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다. 그 법칙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셨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알고보면 모든 법칙의 위에 군림하는 법칙은 바로 물이 흘러가고 있는 모양이라는 점이다. 법(法)이라는 글자의 의미가 그렇다는 뜻인데, 이렇게 나타나는 기준에서 벌써 그 맛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느낀다. 물이 법이라니? 그러한 이유는 뭔가 일관성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이 일관성이 있는 것은 무엇일까?


1) 낮은대로 흐른다


우선 물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먼저 떠오르는 것은 ‘높은데서 낮은대로’가 되겠다. 물의 법칙에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셈이다. 밤이건 낮이건, 여름이건 겨울이건 간에 물은 높은데에서 낮은대로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법이라고 하는 기준을 삼았을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물은 위로 흐를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가장 변수가 없는 것으로 봤을 것이다. 그러니까 물로써 기준을 삼았겠지...

혹 분수대를 생각하면서 역류하는 것을 생각하시진 않으실는지 모르겠으나, 분수는 인간의 작난일 뿐이다. 결국 그 물도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외로 하고, 또 우주선 속에서의 물을 떠올리시는 벗님도 계실 듯 하다. 그 상태에서는 물이 어디로 튈는지 장담을 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즉 아래로만 흘러가는 법칙은 무중력(無重力) 속에서는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기울여보면 우주선 속도 역시 인간이 만든 장치에 불과하다. 이것도 분수대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제외시킨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이제 떼거지(?)로 나오실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대기권 밖으로 나가서 한번 생각해 보자고 말이다. 물론 대기권 밖에서는 물이 아래로 흐른다는 법칙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회심에 찬 눈빛으로 그러시겠지, ‘거봐라 낭월아~ 변하지 않는 법이 어딧어? 다 예전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그렇게 봤을 뿐이야. 흐흐흐~’

이렇게 말씀을 하고 싶으실듯도 하다. 그러면 낭월이도 그냥 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심정으로 떼거지를 쓰게 된다. ‘얌마! 대기권이 지구냐? 물이 흘러가는 법칙은 지구에서 존재하는 법칙이라고 했는데, 우째 고로코롬 삐따닥하게만 생각하냐? 그래가지고는 일생을 연구해도 명리학을 깨닫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일찌감치 관두고 취직이나 해라~!’


2) 물은 쉬지 않는다


쉬지않고 흘러가는 것이 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물을 보면서 부지런하게 일을 하라고도 했는데, 실로 물은 멈추지를 않는다. 언제나 흘러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겨울에 얼어있거나, 언덕이 가로막고 있을 경우에는 흐르지 못하겠지만, 그때에는 조용히 때를 기다린다. 그랬다가는 더욱 큰소리를 내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이렇게 부지런 한 것이 물이다. 그리고 물이 흘러가다가 멈추는 곳에서는 필시 큰 문제가 발생한다. 물은 흘러가야지 중지하고 고여있으면 그 주변의 모든 생물을 썩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니까 어쨌던지 물은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흘러가는 작용은 인체내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다.

동맥을 타고 흐르고 정맥을 타고 흐른다. 언제나 쉬임없이 흐르고 있는 물이다. 그리고 구석구석 0.01mm의 가느다란 길(실핏줄)도 놓치지 않고 구석구석 움직인다. 이렇게 흐르는 물은 사람에게 언제나 싱싱한 젊음을 주게 된다. 만약 이렇게 흐르던 물이 멈추면 큰일이난다. 그 멈추는 원인이 심장이라고 한다면 그냥 식어질 것이다. 그러면 생명은 끝이다. 끌어다가 묻어버리는 일만 남게 되는 것이다. 만약 심장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그야말로 길이 막혔다면 역시 큰일이난다. 그렇게 막힌 물은 점차로 고여서는 한꺼번에 난관을 돌파하고 빠져나간다. 물론 이것이 자연상태라고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대로 넘쳐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체내에서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이것은 혈관파열이라고 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다시 머릿속에서 터지기라도 하면 뇌졸중 , 뇌출혈, 중풍 등등의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이러한 상황에 처하면 대개는 반신불수가 되거나 죽는 것이 태반이다. 물이 잘 흘러가지 못하는 부작용은 이렇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법을 어겨서는 않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물이 자연적인 흐름에 의해서 위로 올라가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나무로 올라가는 경우를 말하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물이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수생목이라고 했을까? 물이 나무를 만나면 그렇게 바닥으로만 기다가도 훨훨 날개라도 달은 것처럼 위로 올라가서 넓은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도 특별하다면 특별한 경우이다. 그러나 올라가봐도 결국은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이니까 또한 분수의 다른 형태라고 생각을 해본다.

이번에는 바다의 흐름을 생각해본다. 이른바 ‘해류(海流)’가 생각나서이다.분명히 물이 흘러다닌다는 증거로써 해류를 채용해야 할 모양이다. 그래서 바다도 그 흐름이 있는 모양인데, 문제는 흐름이 위아래가 없다는 점이다. 더워진 물은 아래로 흘러가고 또 그 힘으로 아래에 있던 물은 위로 흐르게 되니까 이러한 경우에는 반드시 물이 아래로만 흘러간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는 경기도 연천인가에 있는 산정호수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있다. 언젠가 한번 놀러를 가봤더니 물이 완전히 흙탕물이었다. 예전에 듣기에는 한국에서 가장 물이 맑은 호수라고 들었는데, 전혀 딴판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일년에 단 두 번만 그렇게 물이 뒤집힌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하필이면 그러한 때를 골라서 갔던 셈이다.

그 이유는 완전히 바다의 흐름과 같다. 상부에 있던 물이 바깥의 온도로 인해서 차거워지고 하부에 있던 물은 온도가 변하지 않는단다. 그러면 위의 무거운 물이 아래로 흘러가게 되고, 그로 인해서 아래의 물이 위로 솟구치면서 바닥의 흙앙금이 모두 따라올라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보기에는 잔잔한 호수가 뒤집힌 것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호수에서도 흐름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역시 물은 아래로만 흐른다는 말은 그대로 살아있는 셈인가? 무거워진 물인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니까 말이다.


3) 만물을 씻어준다


씻어주는 작용도 물에서는 빼어놓을 수 없는 기능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씻어주는 작용은 물이 알아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다른 四行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도 상세하게 살펴보면 씻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타고 흐를 뿐이라는 점을 관찰할 수있다. 물은 씻어준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흘러가고 있는 것인데, 그렇게 흘러가면서 때가 씻긴다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하겠다. 목욕탕에서도 그렇다. 차가워진 물은 그렇게 아래로만 흘러가지만, 뜨거운 물은 침투성이 좀더 좋아진다. 원래가 침투를 하는 것은 뜨거운 성분들이다. 그래서 물에다가 열기를 가하면 그 열기의 작용으로 인해서 물도 상당부분 침투를 하는 성질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온탕에 몸을 담그면 때가 불어서 잘 씻어지는 것이다. 이거 좀 찝찝한 이야기가 되는 것 같군...


4) 냉각기능이 있다


물과 열은 서로 밀접한 인연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 열이 있으면 물이 가서 열을 죽여버린다. 그러면 열은 식게되고, 이러한 작용은 날이 더울적에 특히 필요한 법칙이다. 즉 더울적에 등물이라도 한번 하게 되면 등줄기가 시원하고 한참은 그런대로 견딜만 한 법이다. 그래서 열기를 죽이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에서도 이 작용은 그대로 유지가 된다. 엔진이 열심히 돌아가느라고 열이 발생하면 과열하게 된다. 그렇게 과열하게 되면 엔진이 터져버리게 되는데, 여기에서 바로 물의 냉각작용이 채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라디에터에 담긴 물이 엔진의 열나는 부분을 돌아다니면서 열기를 빼앗아다가 밖으로 몰아낸다. 그러면 엔진도 자신의 본래 사명대로 계속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냉각기능을 하는 라디에터에 물이 없던지 하면 엔진은 즉시에 불타버리게 된다. 그러면 연기가 펑펑 나면서 차는 진행을 중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에서도 물의 법칙 중에 하나인 냉각기능이 그대로 활용된 셈이다.

이것을 인체에다가 적용시켜보자. 심장이 엔진과 동격이다. 그러면 심장이 열을 받으면 터지게 되는 작용이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하겠는데, 당연히 심장이 터져버린다. 그래서 꾸준하게 쉬지않고서 돌아가도록 하는 작용은 분명히 냉각기능도 포함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가 무슨 열받을 일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열이 뻣쳐오르면 이것은 역부족이라서 도리없이 혈관이 터져버리고 냉각기능을 발휘할 필요도 없이 부서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사는 방법 중에 하나는 열을 받지 말고, 마음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항상 열을 받을 요소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우리 명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도 이러한 이치를 바로 알고서 가능하면 심장이 열받지 않도록 해서 저마다 타고난 천명을 살고 가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물론 말만 이럴 뿐이고, 정작 낭월이도 외부에서 열을 받게 하면 연기를 푹푹 내뿜을 수밖에 없더라만...


5) 응집하는 성분이다


물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은 결국 응고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어디에선가 말씀을 드린 기억이난다. 즉 물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모여들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음양오행에서 말씀을 드렸는데, 물의 특징을 이렇게 관찰해보고 있다. 그래서 다시 계수의 관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물은 응고하는 성분이고, 그 내부에서는 움직이려고 하는 성질이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몇가지 관점으로 물에 대해서 명상을 해봤다. 이렇게 여러관점에서 물을 관찰함으로써 본래의 성분을 이해하는데 참고를 삼도록 하기 위해서다. 벗님도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삼아서 보다 발전된 예리한 통찰력으로 물의 본질에 대해서 관찰을 해주시기 바란다.


(3) 인간적인 관점


그 집안의 가족 구성원 중에서 癸水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사람은 누구일지 얼핏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관찰해가면서 대입을 시켜보는데, 아무래도 가정에서 물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은 어머니라고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기토에게 부여를 해버린 후가 되기 때문에 다시 끌어다가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토를 다른 역할로 보고서 계수를 그냥 어머니의 위치에다가 부여를 해버리고 속편하게 넘어가버릴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기토의 역할도 어머니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렇게 쉽사리 관찰했던 내용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어서 좀더 계수의 역할을 궁리하도록 해본다. 과연 계수에 어울리는 가족이 없을까? 정말로 없다면 계수의 역할을 약간 바꿔서 관찰해보면 또 어떨까? 그렇게 궁리를 하다가 절묘(?)한 타협안을 찾아냈다. 그게 뭐냐면 계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시종일관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싶기도 하고, 물이 의미하는 것은 가족 전체의 삶과도 연관지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다시 관찰을 해본다.

계수가 맨 마지막에 있는 것도 어쩌면 그러한 의미가 있을런지도 모른다. 계수의 역할은 전체의 가족들이 서로 의지를 하고  살아가도록 연결지어주는 끈끈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되어서이다. 과연 이러한 접근방식이 앞의 이야기와 서로 연결이 되어서 설명이 가능한지 함께 생각해주기 바란다. 다만 생명력을 가장 활기차게 유지해주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가족의 팀웍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야말로 뿔뿔히 흩어져버리면 애초에 가족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들은 물을 먹어야 사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산속의 옹달샘에서도 여실히 증명이 된다. 산속의 친구들은 중심점에 언제나 맑은 물이 퐁퐁 나오는 옹달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던지 놀다가 목이 마르면 찾아와서 물을 먹고가는 옹달샘은 산중의 동물들에게 없어서는 않될 중요한 조건이다. 물론 물만 있으면 사느냐고 항의를 한다면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겠으나, 앞에서 말씀드린 삶의 중요한 조건으로 빛이 들어가야 하겠지만 태양이 없다는 것은 생각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제외시키고 그냥 물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아진다는 것과도 서로 통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정에서의 물도 곧바로 가족의 생명력을 담당한다고 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의미는 혈통간에 발생하는 애정은 물보다도 더욱 진하다는 이야기가 되겠고, 그래서 가족에게는 피가 되겠다. 이러한 의미로써 계수의 역할을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반드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고, 또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다만 그 역할이 계수에 어울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계수는 가족을 구성하는 중요한 틀이라고 관찰을 해보는 것이다.


다시 이것을 국가적인 관점으로 바꿔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국가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수도국이 있다. 물에 대해서 연구하는 기관일거고, 나아가서는 환경보건이나 위생과와 같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 기관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기관들은 모두 계수라고 하는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을 해보고 싶다. 아울러서 수자원공사도 포함시키자. 그러나 이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법이라고 하는 자체는 법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 정상이다. 자신이 자신을 알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이 법이라면 계수는 법에 대해서 모르고 있어야 정상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국가에서는 법아닌 법이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민족성이 아닐까 싶다.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성질은 역경을 만날수록 더욱 의미가 커진다. 그렇게도 힘들게 살아온 우리의 과거들이 그렇게 유지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민족이라고 하는 묶어주는 결속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의 힘이 응고하는 성분이라고 했다. 모여드는 성분은 결국 공동체의식(共同體意識)을 만들어 내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불은 자꾸 분산이 되는 형태를 만들어 낸다면 물은 자꾸 연결시키는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에 있어서의 계수의 역할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어떤 조직이 아니다. 고유하고 절대적인 어떤 보이지 않는 힘, 이것을 일러서 참다운 법칙이라고 명하고 싶다. 그러한 역할을 할 수가 있는 계수가 있다면 그 나라는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발전하고 단결된 나라일 것이다.

가족간에서도 계수가 살아있으면 살아있을수록 그 가정의 결속력이 좋아지고 똘똘 뭉쳐서 남들이 감히 어떻게 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은 이미 주변에서 늘상 보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계수가 그 기능을 잃어갈 즈음이면 점차로 응집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분산이 되는데, 이렇게 하는 데에는 열기운이 단연 으뜸역할을 한다. 가열하게 되면 물은 분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똘돌 뭉친 물이 맛도 좋은 법이다. 가장 맛이 좋은 물의 온도가 몇도인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대략 따져본 바로는 섭씨로 따져서 4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차고 맛있는 물이 가장 비중도 높고, 활성화가 되어있는 좋은 물이라고 한다. 이것을 일명 육각수(六角水)1)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물을 먹고 살면 체내의 모든 죽은 세포들은 밖으로 배출된다고 하는 말도 있다. 그야말로 감로수(甘露水)2)인 셈인가보다.

육각수라고 하는 말에서 떠오르는 것은 ‘히란야’라고 하는 도형이다. 이것은 대충 육각도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여기에서다 담배를 5분 정도 놓아뒀다가 피우는 것 만으로도 그 성능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쨌던 물 중에서 가장 양질의 상태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는데, 이러한 상태가 되면 결속력이 뛰어나다는 점이 가장 특징이라고 하겠다.


(4) 세계적인 관점


세계적으로도 국가적인 관점에서 바라다 본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전에는 소련을 물의 나라로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은 그러한 냉각체제가 무너져버렸으니 적용을 시키기가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름도 부르기 힘든 무슨 쑤왈라베스크 등등은 더욱 어려워서 그냥 넘어가는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이러한 의미가 있는 낱말이 있어서 다행이다. 즉 ‘지구촌(地球村)’이라는 말인데, 이 의미는 지구는 단결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단결을 말하는 것으로는 역시 계수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자신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다가 국가관이 생기더니 이제는 세계적으로 통일을 해야 진정한 행복이 될것으로 생각하는 곳까지 도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전단계로서 지역적으로 결합을 이루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유럽연합이 생기더니 이제는 환태평양연합도 만들 참이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연합도 만들어야 하겠지...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 세계는 하나가 되는 날도 과히 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전에 대충 20여년 전쯤만 해도 국제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민족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에 와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도로 흘러간다. 이렇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방송에서도 외국인들이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하면서 한국인 행세를 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들을 나라를 버린 사람이라고 비난을 하지 않는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그렇게 살아도 마찬가지이다. 배달민족이라고 하는 옹색한 마음에 갖혀서 스스로 고생을 하지말고 지구촌이라고 하는 큰 생각으로 속편하게 잘 살아보자는 분위기가 늘어나고 있는 것같다. 그리고 큰 눈으로 바라다 보면 니꺼내꺼 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니 이런 쓸데 없는 것에 집착을 하다가 인생 다 보내고 나면 그냥 죽기가 억울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물론 독립운동을 하시느라고 목숨을 바치신 애국선열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흐름은 막을 수가 없는 것 같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지구를 연결시켜주는 것이 계수가 아닐까 하는생각을 하면서 그러한 기구는 UN이 담당하게 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그렇다면 국제연합기구가 바로 국제간의 법칙이라고 하는 원리가 그대로 존재한다고 보겠다. 그렇게 되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계수는 법이라고 하는 이치를 그대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가지의 이치를 궁구하다가 보면 전혀 엉뚱한 것 같은 곳에서도 서로 통하는 일관성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망외소득(望外所得)의 기분에 즐거워지기도 한다.


(5) 사주적인 관점


그렇다면 사주에서도 계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법칙을 준수하고 결속력을 다져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가정이 발생한다. 그리고 실제로 분산시키는 작용 보다는 뭉쳐주는 작용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발견하게된다. 이렇게 계수로 태어난 사람은 남들과의 결합에 관심이 많으므로 스스로는 오히려 별 소득이 없는 일에 분주하기만 한 결과도 예상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그만두지도 못한다. 왜냐면 사람은 자신의 만족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서로 싸우던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서 서로 좋아지게 되었다면 이것만으로도 대단히 보람이 있는 일인 셈이다. 그리고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볼적에 사주에서도 적절한 배합을 이루고 있으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해 갈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사람은 그 적성도 카운셀러 쪽에서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많겠다. 세심하게 관찰을 하는 안목은 아마도 남들이 소흘히 여기는 곳에서 대단히 큰 힌트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스스로 냉정해야만 남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줄 수가 있을 것으므로 주변의 영향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늘상 마음단속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특성을 계수로 태어난 사람의 사고방식이라고 보겠다.


그런데 이러한 계수가 너무 넘쳐버리면 범람을 하게 된다. 이것은 전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독선적인 상태로 흘러가고 자칫 그 피해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겠다. 범람하는 물은 농경지고 도시고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고서 마구 휩쓸어버린다. 오죽하면 ‘수마(水魔)가 쓸고 간 자리’라는 속담이 생겼겠는가, 이 말은 ‘불이 난 자리에는 재라도 남아있지...’ 라는 말이 추가되어야 완전한 속담이 된다. 그야말로 깨끗하게 쓸어버리는 위력은 결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신속하게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고 균형을 찾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어보기 바란다.

아울러서 너무 허약한 계수라면 자신의 주장을 남들에게 피력하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남들은 알아주지를 않으니까 스스로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잘 표현하도록 마음을 써보는 것이 좋겠다. 항상 마음 속으로만 남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지 막상 실행을 하지못하면 전혀 도움이 되지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공부를 통해서(金生水의 작용을 노림)라도 자신의 힘을 강화시켜야 이 시대에 자신의 일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러한 노력의 방향을 명리학을 통해서 잡아가는 것이라면 아마도 사주공부를 하는 가치가 된다고 본다. 그렇지않고서 그냥 되는대로 스스로 살아간다고 하면 아마도 목적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 틀림없다.

물론 시행착오가 나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생은 어디에선가 공부를 하기 마련이고, 그 나름대로 얻은 것은 소중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스스로 경험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길을 못찾아서 헤메고 있다면 이것은 참으로 안쓰러운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러한 경우에 있는 사람은 명리연구가에게 의뢰를 해서 한번 쯤은 자신의 길에 대해서 의논을 해보는 것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